새로운 관계맺음과 그 어색함 속에서
  또다시 3월이 되고 매년 그래왔듯 서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그 안에서 서로는 서로에게 어색하지만 친근한 모습을 보여 온다. 가끔은 자신이 보지 못했던 자신을 알 정도로 변해버리고 심지어 가면이라고 까지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를 힐난하거나 하기보다는 오히려 이러한 어색함을 안타까워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하지만 이 주기는 3월이라는 특수화된 시공간 속에서 매년 되풀이되는 것으로,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우리는 어쩌면 일상처럼 다시 돌아가 자신의 삶, 자신의 자리를 지켜나가며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3월이 지나고 나면 살포시 안게 될 다소의 허망함과 쓸쓸함, 캠퍼스 내부의 어느 정도의 파편화가 또다시 혹은 처음으로 다가설 지도 모르겠다. 떠올랐다가 다시 가라앉아 버리는 분위기에 실망하며 돌아서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는 예상을 조심스레 해볼 수도 있다. 이러한 불안감을 차치하고라도 모두에게 어색한 ‘새로운 관계맺음’이라는 과제가 어쩌면 현재 나침반 구성원들 대다수에게 충분한 부담감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는 있다.
  모든 사람은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타인에게 다가가고 친해지는 것을 시도한다. 또한 이 방식들은 서로 충돌하고 미묘하고 잘 보이지는 않는 갈등들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 지점에서 갈등은 보통 표출되지 않는다. 이유는 두말할 것 없이 3월이라는 시간이기 때문에. ‘가자’와 ‘하자’라는 말이 권유로 서로에게 무엇을 ‘강제하지 않고’ 권할 뿐이지만 그 안에서 ‘No’라는 대답은 나오지 않는다. 선배가 후배에게 혹은 연장자가 나이어린 사람에게 말하는 것은 어쩌면 그 안에 보이지 않는 무언의 압력이 권유를 받은 사람에게 거절하고자 하는 의지조차 소거시켜버리는 지도 모른다. 물론 이에 대해 권유를 한 사람이 잘못했다고 단정 짓기는 이르다. 그 혹은 그녀 역시도 자신의 방식으로 손을 내민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강제로 권한 사람은 없더라고 강권을 받은 사람은 있는 매우 기묘한 상황이 벌어진다.
  서로에게 다가간다는 그리고 다수 대 다수의 만남으로 이어지는 특수한 상황이 벌인 일종의 해프닝이라고 치부할 수 있는 문제이지만, 어쩌면 매해 반복되어 왔을 법한 일에 다소 주의를 기울일 필요는 있지 않을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순수한 마음에서 말하는 것이지만 받아들이는 상대방에 따라서 그 점에 대해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들을 쉽사리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로 웃으며 넘어가기엔 다소 위험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이렇게 어설프고 난해한 화두를 던져본다.
by yuro | 2007/01/26 06:58 | 글쓰기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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